• 최종편집 2024-03-29(금)
 


저 먼 동쪽하늘이 점점 붉은 빛을 띠기 시작한다.

 

간밤에 한바탕 소란을 피운 것도 아랑곳 하지 않고 병사들은 씨-레이션을 까먹기 시작한다.

긴장했던 야간매복이 적잖은 에너지를 소모한다. 그 와중에 윤광호 상병이 복숭아통조림을 갖고 와서 “소대장님 이거 드세요.”하며 깡통을 내민다.

 

간밤에 반케부락 수색에서 빠졌던 광호가 퍽 미안했던 탓인지. 깡통을 받고서 “고맙다. 너가 웬 일이냐?” 했더니 “분대장 박하사님이 보냈습니다.” 대답하고는 다시 제자리로 돌아간다.

 

달콤한 주스를 마시며 박하사와 윤광도 상병의 출국 전 광경이 불현듯 떠올라서 잠시 긴장을 푼다.

 

우리가 경기도 양평에서 월남과 유사한 각종 지형지물을 만든 가운데서 특수훈련을 마치고 여의도 백사장에 30연대 온 병사가 집결한 적이 있었다. 한달 후 국군의 날 기념식에 참여할 예행연습을 하기 위해서다.

 

여의도 전체는 허허벌판 백사장인데다 간간이 바람이 불면 천막 안 까지도 온통 모래먼지 투성이가 된다.

 

박상정 분대장이 윤광호를 데리고 내게로 왔다.

“소대장님, 윤광호가 울고 있기에 자초지종 얘기를 듣고 같이 왔습니다.”

광호는 고개를 푹 떨 군 채 서있다.

 

사연인 즉, 내일이 추석명절인데 광호는 3대독자로서 이제 전쟁터로 출발 전에 집에 가서 마지막으로 차례를 지냈으면 하고는 구석에서 눈물을 흘리더라는 것이다. 그래서 내게 보고하고 내일 아침 외출승낙을 받으러 왔다고 한다. 집이 안양이라 가까운 곳이라서 하루 만에 충분히 갔다가 올 수 있단다.

 

작년에, 앞서 파월한 맹호부대에서도 출발 전에 부산에서 탈영한 병사들이 속출했다던데...

평소 광호의 성품으로 봐서는 거짓말 할 친구는 아니긴 하지만 한 길 사람 속을 모르는 법, 나는 한동안 철모를 벗어 놓고 망서리다가 결심을 했다.

 

“그래 박하사와 함께 갔다 와라. 내일 너무 늦지 않도록 일찍 귀대해라. 늦어도 18시 전 까지는 도착하라.”

 

그들은 다음날 새벽, 그러니까 추석새벽이다.

 

일찍 내게 보고하고 안양으로 출발했다. 나는 그 시간부터 그들이 귀대할 때까지 탈영병이 되지않도록 맘을 조아렸었다.

 

추석 특식이라며 고급 빵을 받고도 입맛이 별로다.

 

여의도 끝머리 한강 쪽에 병사들이 줄을 지어 서 있는 광경이 보인다.

 

“저긴 뭐야?”하고 물으니까 박중사가 대답한다. “남산 돗자리부대 여자들이 와서 대목장 본답니다.” 남산 돗자리부대라…

 

오후 6시 직전에 박하사와 윤일병(진급직전)이 돌아왔다. 연방 철모 밑에는 땀방울이 맺힌 채 다녀온 보고를 한다.

 

간간이 다니는 안양시외버스를 타고 내려서 걷고를 하다가 겨우 집에 도착하니까 광호어머니와 누이동생 두 식구가 차례를 막 지내고 밥상을 차리던 중이더란다. 생각지도 않던 아들이 불쑥 들어서니까, 놀람 반 반가움 반 전쟁터로 간다던 자식을 안고 얼마나 가슴 미었던지 마구 울음보가 터졌다고 했다.

 

어쩌면 홀어머니와 여동생과의 마지막 상봉이 될 법도 한 쓰라린 시간. 밥도 제대로 넘어가지 않고 먹는 둥 마는 둥 수저를 놓고 둘은 모친에게 큰 절을 올리고 문을 나섰다.

 

면회외박.jpg
일러스트/전광섭

 

 

골목을 벗어나기 전에 뒤돌아서서 다시 한번 거수경례를 하고 유유히 사라진다. 아들의 뒷모습을 보며 노모는 얼마나 눈물을 삼키셨을까.

 

어릴 적 6.25전쟁터로 보내던 사람들의 눈물을 본 적이 많았다.

 

이런 슬픔속의 이별을 목격한 마당에 혹자는 파월장병들에게 돈에 팔려 간 용병 운운하는 친구들을 보곤 한다. 니 새끼도 돈 준다면 싸움터로 보내겠느냐고 반문한다. 그리고 용병이었다면 계약된 돈을 다 준 것을 본 적이 있느냐고 백번 천 번이고 항변하고 싶다. 제발 몸 바쳐 전쟁 치루고 온 형제, 자매들한테 맥 빠지는 소리는 삼가 해 달라.

 

국가에서 인력장사를 했건 말건 간에 내 조국이 불러서 참전했던 것 아니냐!

 

여의도 모래밭. 우린 11중대인데 나의 전령 허상병이 12중대 병장 한명과 주먹다짐을 하다가 상대의 이빨이 왕창 나가버린 사고가 있었다. 알고 보니 이곳에 도착 전에 양평에서 발생한 일이었단다. 서울에 가면 안암동 이모님한테 돈을 꾸어서 이빨 해주기로 하고 서로 합의해서 철창신세는 면했던 것 같다.

 

이제 이 둘을 데리고 서울역 앞의 치과를 찾았다. 두세 번 치료하고 끝난 건지 그 뒤는 기억이 나지 않는다.

 

허은 상병의 귀국 후 일은 근래에 가끔 입에 오르내리는 파월 장병들의 보상금액을 추청하는데 참고가 되므로 다음 기회에 들먹일 예정이다.(다음에 이어집니다)

[국가유공자·베트남참전 장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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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전광섭의 ‘진주알들의 숨바꼭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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