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6-11-01(일)
 
  • 1992년 총선 때 정주영에 전국구 받고 정치입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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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6년 총선에 나선 최불암/연합뉴스

 

김영삼 설득에 민자당 입당, 국회서 신사행보

김민석에 패배, 재도전 망설이다 연기 재개

 

[이코노미서울=정치팀] 최불암(향년 87세)의 67년 연기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는 이력이 있다. 본명 최영한으로 국회에서 보낸 4년(1992~1996)이다. 보수 정당에 몸담았던 이력은 진보 진영 지지층에 아쉬움을 남겼지만, 그에게 정치는 세상 물정을 새롭게 배운 색다른 경험이었다. 그 시작과 끝에는 정주영과 김영삼, 그리고 김민석이 있었다.

 

최불암은 원래 정치에 뜻이 없었다. 1970년대 말 '수사반장'이 한창 인기일 때 중앙정보부 사람이 찾아와 정치 입문을 권했다. 중정이 '나는 새도 떨어뜨린다'던 시절이라 대놓고 거절하기도 어려웠다. "생각할 시간을 달라"며 빠져나갈 궁리를 하던 중 10·26이 터졌다. 박정희의 죽음이 정치판으로 끌려가던 그를 구해준 셈이다.

 

그러나 '불도저' 정주영의 추진력은 감당하기 어려웠다. 1992년 대선을 앞두고 통일국민당을 창당한 정주영이 도움을 청하자 처음엔 얼굴만 비춰줄 생각이었다. "회장님, 제가 무슨 정치를 합니까"라며 손사래 치는 최불암에게 정주영은 "가서 앉아만 있으면 돼"라고 했다.

 

그런데 행사장에 가니 사회자가 느닷없이 최불암을 소개하며 무대로 불러올렸다. 엉겁결에 덕담 한마디 했더니 이튿날 신문에 '정치 입문' 기사가 크게 실렸다. 큰일 났다 싶어 일본 촬영을 핑계로 몸을 피했지만 돌아오니 총선 전국구 후보가 돼 있었다. 아내 김민자는 "당신이 무슨 정치를 안다고 국회의원을 하느냐"며 극구 말렸다. 하지만 막상 금배지를 다니 욕심이 생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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왕회장 정주영과 '국회의원' 최불암
(서울=연합뉴스) 조보희 기자 = 정주영 현대그룹 명예회장이 19일 오후 63빌딩에서 열린 장남 고 정몽필의 장녀인 손녀 정은희씨 결혼식에 참석해 신한국당 최영한(최불암) 의원과 대화하고 있다. 1995.8.19

 

국회 생활은 낯설었다. 평생 몸에 밴 예의범절마저 시빗거리가 됐다. 나이 많은 장관을 '장관님'이라고 불렀다가 동료 의원들에게 "왜 그렇게 굽실거려"라는 핀잔을 듣기도 했다. 문화 현장을 모르는 관료들도 답답했다. 영화 '죽은 시인의 사회'를 본 사람이 있느냐고 물었더니 참석한 공무원 50여 명 가운데 한 명도 없었다.

 

그해 12월 정주영의 대선 패배로 국민당이 와해되자 최불암은 의원직을 내놓고 정계를 떠날 생각을 했다. 이번에는 대통령이 된 김영삼이 붙잡았다. "당신을 국회에 보낸 국민의 뜻을 거역하는 것"이라는 충고에 고민하다 결국 민자당으로 옮겼다. 훗날 그는 그때를 떠올리며 "원래 연예계 사람들이 말을 잘 들어요"라며 웃었다.

 

1996년 15대 총선에서는 지역구 의원으로 재선에 도전했다. 서울 영등포을에서 맞붙은 상대는 80년대 운동권의 상징 김민석이었다. 당시 31살의 국민회의 후보 김민석은 국민배우를 헐뜯는 대신 절묘한 선거 구호를 내걸었다. '최불암은 무대로, 김민석은 국회로'였다.

 

결과는 김민석 48.87%, 최불암 32.49%였다. 최불암은 낙선인사를 다니며 "정치인보다는 편안한 안방손님이 돼달라는 뜻이죠"라며 유쾌하게 웃었다. 김민석에게는 의정활동을 지켜보겠다며 '국보급 정치인'이 돼달라는 덕담을 건넸다.

 

그해 4월 총선이 끝난 뒤 국회 앞에서 최불암과 우연히 마주쳐 이야기를 나눴다. 스포트라이트를 한 몸에 받던 김민석을 간신히 인터뷰하고 국민회의 당사를 나온 참이었다. "기분이 어떠세요"라고 묻는 기자에게 "다 팔자지 뭐"라며 특유의 너털웃음을 터뜨렸다. 그러면서도 "재기해 4년 뒤를 준비해볼까 해"라며 미련을 보였다. 어느덧 30년이 흘렀지만, 그때의 미소와 아쉬운 표정이 지금도 생생하다.

 

최불암에게 여의도에서 보낸 4년은 정치의 현실을 체험하면서 자신이 돌아갈 자리를 확인한 시간이었다. 세상을 보는 눈을 넓히고 연기에 깊이를 더하는 밑거름이 됐다. 어쩌면 그 외도가 있었기에 '국회의원 최영한' 대신 '국민 아버지'라는 이름으로 우리 기억 속에 남게 된 것인지도 모른다.

 

 

- 한국의 아버지상을 대표해 '국민 아버지'로 불린 배우 최불암(본명 최영한)이 별세했다. 향년 87세.

 

30일 유족에 따르면 최불암은 29일 밤 10시께 서울 강서구 한 병원에서 입원 치료 중 세상을 떠났다.

1959년 극단 '실험극회'에서 연극 '햄릿'으로 데뷔한 고인은 한국형 수사물의 시초격으로 18년간 방송된 MBC '수사반장'(1971∼1984, 1985∼1989)의 박영한 반장, 22년간 방영된 국내 최장수 드라마 MBC '전원일기'(1980∼2002)의 양촌리 김 회장 역을 비롯해 연기 인생 67년간 드라마와 영화, 연극 무대를 아우르며 국민적 사랑을 받았다.

 

배우 김혜수는 지난달 30일과 31일에 이어 이날까지 사흘째 친딸처럼 조문객들을 안내하며 유족 곁을 살뜰히 지켰다.

 

김혜수는 드라마 '사모곡'(1987)에서 고인의 아내인 배우 김민자와 모녀로 호흡을 맞춘 것을 계기로 최불암을 '아버지'라고 부르며 가족처럼 가까이 지내온 것으로 알려졌다.

 

고인과 드라마 '전원일기'에서 22년간 부자 관계로 호흡을 맞췄던 유인촌 전 문화체육관광부 장관은 이날 다시 빈소를 찾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유 전 장관은 조문이 시작된 지난달 30일에도 빈소를 찾아 고인을 애도했다.

 

원로 배우 강부자도 직접 빈소를 찾아 고인의 넋을 기렸다.

 

고인과 '여명의 눈동자'(1991~1992), '이별이 떠났다'(2018), '미망'(1996~1997) 등 작품에서 호흡을 맞췄던 배우 채시라는 사회관계망서비스(SNS)를 통해 추모의 뜻을 전했다.

 

채시라는 고인과 나란히 찍힌 '미망' 속 한 장면의 사진을 공개하고 "함께 해주셔서 감사했고 보여주시는 것만으로도 배움이었다"며 "살아 내시느라 많이 애쓰셨어요. 편히 쉬소서"라고 적었다.

 

고인은 지난해 3월 허리디스크 수술을 받은 뒤 재활치료를 받아 건강이 악화하며 지난달 29일 별세했다.

 

발인은 2일 오전 7시 40분 비공개로 엄수되고, 오전 9시 여의도 성당에서 염수정 추기경 집전으로 장례 미사가 거행된다. 고인을 '이모부'라고 부르며 각별하게 여기던 팝페라 테너 임형주가 '아베 마리아'(Ave Maria)를 노래하며 마지막 인사를 전할 예정이다.

 

고인은 장지로 향하기에 앞서 생전 전국후원회장을 맡았던 초록우산 어린이재단을 마지막으로 찾은 뒤 경기도 파주시 동화경모공원에 안장된다.

[연합뉴스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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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불암의 정치 외도, 그 못 다한 이야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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