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종편집 2024-04-20(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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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11)전광섭의 ‘진주알들의 숨바꼭질’
    지금의 ‘호치민 시’ 그때는 동양의 ‘파리’라던 ‘사이공 시’의 ‘탄손누트’공항이다. 귀국 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중이다. 날씨는 여전히 40도를 오르내린다. 나는 맨손이지만 함께 귀국길에 오르는 수 십명의 병사들은 모두가 두 손이 묶인 채로 함께 대기하고 있다. 어디선가 “소대장님!”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린다. 설마 이곳까지 누가 날 찾으러 오랴 싶지만 무심코 돌아보니까 멀리서 두병사가 뛰어오고 있는 게 아닌가, 무전병 김시동 상병과 변동철 하사다. 반가움을 말로 표현하기가 어렵다. 공항의 이별을 앞두고 끝까지 친구들을 보내준 중대장에게 고마운 마음이다. 나의 귀국선물 떠블백을 챙겨 왔다. “머나먼 고무밭기지 정글에서 어떻게 여기까지 올 수 있었냐?” 백을 내려놓고 경례하기가 무섭게 셋은 껴안고 고개를 숙였다. 난 마음속으로 “하나님, 감사합니다.”를 연발했다. 영영 같이 땀 흘렸던 친구들과 생이별하는 줄 알고 월남 땅의 모든 인연을 깨끗이 접고자 하는 순간인데 끝까지 친구를 보게 한다. “중대의 장교들과 3소대원들이 조금씩 모아서 귀국 백을 장만했습니다.” 안에는 TV와 카메라 등이 들어있다고 일러준다. "한명도 죽지 말고 전원 건강한 모습으로 귀국하길 바랄게. 꼭 살아서 만나자." 이토록 어처구니없는 전투중의 사고로 정든 친구들과 생이별을 하게 되는 이유를 알 길이 없다. 이들이 말한다. 그날 밤에 죽은 영감사건이 베트남 신문에 대서특필로 나고 한동안 떠들썩했단다. 주월사에서 사단으로, 사단에서 연대, 대대로 관련자를 귀국시켜 라는 명령이 떨어졌단다. 그래도 그렇지... 나는 내 임무에 최선을 다했을 뿐이라고 말하고 싶다. 그 당시 채명신 주월한국군 사령관은 “적100명을 놓치더라도 양민 한명을 살해하지 말라”는 지침을 내린바 있다. 이건 민간인과 베트콩이 구별되지 않는 상황에서 언제나 우리병사가 먼저 당한 후에 사격해야 하는 모순을 안고 있기 마련이다. 일선 소대장은 최우선으로 소속 소대원을 보호해야 할 책임을 진다. 드디어 이별의 악수를 하고 비행기 트랩을 오른다. 커다란 美 공군 수송기인 듯하다. 타고 보니까 완전 화물수송기다. 삥 둘레에 간이 좌석이 있고 중앙에는 전사들의 유골함 50개가 쌓여있다. 제트여객기가 있기 전이라 프로펠라 소리가 굉장히 시끄럽다. 중간에 일본 오끼나와 비행장에서 기름을 보충하고 또 떴다. 장장 14시간을 날아오는 동안 밥도 안 먹이고, 이건 완전히 화물취급이다. 캄캄한 밤중에 내린 곳은 아마 지금의 서울공항(성남비행장)이었던 것 같다. 대기하고 있던 트럭에 옮겨 타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마침내 도착한 곳이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큼지막한 붉은 벽돌집 앞에서 전원 내려서 일열 횡대로 선다. 화이바를 콧잔등까지 내려쓴 웬 헌병병사가 나타나더니 화이바를 바닥에 대그락 던져 놓더니 맨 끝 병사에게 다가가서는 난데없이 발로 차기 시작한다. 마치 태권도 연습하듯이 옆차기, 앞차기, 돌려차기 ... 이유 없이 얻어맞은 병사는 금새 피를 흘린다. 다음 병사에게 또 가서 폼을 잡는다. 내가 선뜻 앞을 가로 막았다. “야, 헌병. 이 병사들을 왜 차노! 헌병은 아무른 설명도 없이 전장에서 막 귀국한 병사들을 마음대로 구타해도 되는 거냐! 당장 그만 두지 못해!” 큰 소리를 버럭 질렀다. “저리 비키세요.” 하며 내 턱 밑에 머리를 들이댄다. “야! 이 새끼가 누구한테 반항이야. 야! 주번사관 나오라 그래!” 이렇게 한바탕 소란 끝에 중사쯤 되어 보이는 야간근무 책임자가 나와서 인원파악 후 각각 숙소를 들게 되었다. 나도 장교들의 취침장소로 갔는데 수십 명의 수감자들이 모여 있는 곳이다. 이곳은 재판을 기다리는 미결수 방이란다. 한 달 두 달은 보통이고 오래된 장교들이 많단다. 도대체 이들은 어쩌다가 이렇게 들어 와서 오랜 시간을 갑갑하게 보내고 있나. 이제 내게도 이들과 같이 지겨운 날들을 보내야 하는가, 생각하니 참으로 암담하고 숨막히는 날들이 기다리는 듯 했다. 만 1년 만에 전장을 벗어난 평화의 잠자리를 맞이한 남한산성 육군교도소 미결수 감방이다. 넓은 골마루 방에는 약 30명의 장교들 모두가 벽 쪽으로 머리를 두고 잠을 청하는 모습들이다. 아직 형이 결정되지 않은 미결수들이라 모두 계급장을 달고 있다. 1년 전인 1966년 10월3일 개천절에 부산 중앙부두에서 군악대와 많은 시민들의 환송을 받으며 출정식을 했던 게 아주 오래전 일이었던 양 아련하게만 여겨진다. 전쟁터에서의 기간이 그만큼 긴 시간이었던 것 같다. 인간이 생사의 위험을 겪으며 총 뿌리에 온 신경을 쓴다는 것이 얼마나 긴장 가운데 있는 거냐. 전투는 이유여하를 막론하고 사람의 피를 말리는 극한환경의 지옥이다. 이제 오늘밤 부자유스럽긴 하지만 그곳을 벗어난 잠자리인 셈이다. 모처럼 군화를 벗고 두 다리 쭉 펴고 들어 누웠다. 근데 잠이 들질 않는다. 그때 만6일 주야를 달리면 그 곳에 도착한다던 뱃길이 워낙 거센 파도를 헤쳐 나가느라 7일이 걸렸었다. 산더미 같은 파도가 좌우로 혹은 앞뒤로 너울 칠 때면 사방이 빙 둘러 바다 속이 된다. 병사들이 거의가 다 구토를 한다. 그 때만 해도 양변기 회장실을 처음 보는 거라 그곳에서 용변을 못보고 밤중에 갑판구석에서 볼일을 보았다는 수철이의 50년 후 얘기였다. 흑인 선원이 다음날 물로 씻어내면서 온갖 군소리를 투덜대는 것을 보곤 했단다. 비록 1년이지만 참으로 긴 세월이 흐른 것 같다. 이 밤에 쉽게 잠이 들지 않고 있다. 긴장이 너무 풀린 까닭인가?(다음에 이어집니다) [국가유공자·베트남참전 장교]
    2023-07-29
  • 文 “5년 성취 무너졌다” 무슨 ‘성취’ 있었다는 건가
    ☞조선일보 4.19 사설 문재인 전 대통령이 다음 달 개봉할 본인 다큐멘터리 영화에서 “5년간 이룬 성취가 순식간에 무너져 허망한 생각이 든다”고 했다. 퇴임한 지 1년도 안 된 대통령이 본인 영화를 찍는 것도 이상한 일이지만, 제 자랑까지 하는 것은 겸손 자중하는 모습과는 너무나 거리가 멀다. 문 전 대통령이 말하는 ‘5년간의 성취’가 무엇을 말하는지 알기 어렵다. 그렇게 성취가 크다면 왜 5년 만에 정권을 잃었겠나. 문 정부 5년은 국고 탕진과 천문학적 국가 부채 증가, 이루 헤아릴 수도 없는 위선과 내로남불, 불공정과 무능으로 점철됐다. 마차가 말을 끈다는 소득 주도 성장으로 수백만명의 자영업자와 소상공인을 벼랑 끝으로 내몰았다. 좋은 일자리는 급감하고 노인·알바 자리만 늘었다. 반기업·반시장·친노조 정책으로 성장률은 떨어지고 빈부 격차는 커졌다. 세금 퍼붓기로 국가 부채는 1000조원을 돌파했다. 집값을 잡겠다며 수십 차례 대책을 내놨지만 되레 집값이 폭등했다. 임대차 3법 강행으로 전세 대란이 벌어졌다. 최근 서민들이 목숨을 끊는 전세 사기 사건은 이때 싹이 튼 것이다. 탈원전으로 세계 최고 경쟁력을 가진 원전 산업은 몰락 위기를 맞았다. 멀쩡한 원전의 경제성을 조작하고 공문서를 파기했다. 4대강 보를 개방해 가뭄에 물 부족 사태를 가중시켰다. 대통령 체면 세운다고 국제사회에 온실가스 40% 감축이라는 터무니 없는 약속을 해 국가 경제의 발목을 잡았다. 북한 김정은이 비핵화 의지가 있다고 미국에 보증까지 서며 정상 회담 이벤트에 매달렸다. 하지만 북한은 핵 어뢰까지 만들었다고 한다. 서해에서 우리 공무원이 사살당하고 불태워져도 북한 눈치만 봤다. 김여정이 대북 전단 금지법을 만들라니 곧바로 법을 만들었다. 간첩 수사도 중단해 전국에 간첩이 활개쳤다. 조국 일가 비리가 드러났는데도 비호만 했다. 대통령 친구를 울산시장으로 만들기 위해 청와대·부처·경찰이 총동원됐다. 이상직 전 의원은 문 전 대통령 딸의 해외 이주를 도운 뒤 국회의원이 됐다. 이 모든 일이 국민들을 살기 힘들게 하고 분노하게 했다. 그런데 무슨 성취를 이뤘다는 것인가. 문 전 대통령은 “‘잊히고 싶다’고 했는데 나를 현실 정치에 소환하지 말라”고 했다. 하지만 문 전 대통령이 잊힐 생각이 전혀 없다는 것은 언행에 그대로 나타나고 있다. 퇴임 후 이렇게 열심히 자기 정치를 한 전임 대통령은 없었다. 이제는 영화까지 찍는다고 한다. 이 사람에게 5년간의 실정에 대해 사과부터 하라는 것은 소용없는 요청일 것이다.
    • 정치
    2023-04-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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